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처드 파인만 (문단 편집) == 활동 == [[파일:리처드 파인만 로스 앨러모스 시절.jpg|width=300]] 앞서 말했지만, 로스 알라모스에서 [[핵무기]] 개발계획인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닐스 보어]] 같은 여러 거장들을 만나게 된다.[* 파인만은 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자들 중 막내뻘이었다. 어지간한 주요 멤버들과 한 세대가 차이났을 정도.] 파인만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닐스 보어는 이미 물리학의 거두였던 자신의 앞에서 어떤 반대 의견도 내놓지 않는 다른 물리학자들에게 크게 실망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파인만은 그런 권위 따위는 모르는 천성을 지닌지라 물리학에 대해 토론할 때만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으면서 계속 치고받았다는데,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보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보어에게 '싸가지 없이' 굴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보어가 생각(파인만이 보기에 이상한 의견)을 내놓으면 그걸 들은 파인만은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에요!"'''라고 말했다. 이 때 보어는 [[예스맨|이름만 동료일 뿐 자신의 권위를 두려워하는 작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에 이런 파인만의 태도를 아주 신선하고 흡족하게 여겼다.[* Richard P. Feynman, '발견하는 즐거움', 승영조 옮김, 승산, 2001]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73418|당시 일화]]. 후에 닐스 보어는 역시 물리학자인 그의 아들(오웨 보어[* 오웨 보어 역시 뛰어난 물리학자였으며 197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https://en.wikipedia.org/wiki/Aage_Bohr|Aage Bohr]])에게 "저 녀석은 나중에 정말 크게 될 놈이니 잘 지켜보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보어라고 까지 않는 건 아니다.[* 해당 글이 서술되어있는 부분에서 보어가 아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표현하는데, 자신에게 무언가 말은 하는 거 같은데 파이프 담배를 물고 웅얼웅얼 중얼중얼거리느라 그러한 단어들은 아들인 오웨 보어가 해석해주어야 했다며 대차게 깐다.] 아무튼 그는 맨하탄 프로젝트에서 [[한스 베테]]와 같이 현재도 기밀에 속하는 [[베테-파인만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파인만은 핵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던 아인슈타인과는 달리 그다지 죄책감 같은 건 안 느꼈다고 한다. 이 부분은 로스 엘러모스에서 만났던 [[존 폰 노이만]]의 영향이 크다고 자서전에서 썼다. 폰 노이만과 함께 산책을 하면서 "자기가 사는 세상에 자기가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폰 노이만의 사상에 물들어 버렸다고 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그의 책에서 나타난 히로시마 원폭 투하 순간의 행동이다. 파인만은 레스토랑에 앉아 '지금쯤 터졌을 거야' 짐작하고 신나게 폭발 반경을 계산하면서 들뜨는 것은 물론 봉고도 쳤다. 일부 과학자들이 투하 자체에 정신적 충격을 받거나, 최소한 작전 관련자들이 대규모 파괴무기의 사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 그래도 파인만도 아주 충격을 안 받은 건 아니었는데, 죄책감보다는 허무감을 느껴서 잠시 멍~ 해졌다고 한다. 일본을 방문했을 때 전후 복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어차피 핵 한 방이면 다 터지는데 다시 만들어서 뭐하나." 같은 생각이 들었고, 자서전에 따르면 '그것에 대한 생각을 그만둔' 부류가 되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생각을 더하던 부류는 핵이 성공리에 터지고 연구원들 파티할 때 구석에서 '궁상을 떨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다가 대부분은 반전, 반핵운동으로 빠졌다고 한다. 더불어 아직까지 그런 일(핵폭발 때문에 기껏 복구한 것이 허사가 된 것)이 다시 없어서 다행이라고도 썼다. 그가 이렇게 핵에 대한 태도를 일찌감치 자기완결을 지은 것은 평상시의 캐주얼한 태도와도 연결된다. 파인만은 명쾌한 결론과 끝맺음이(설사 그것이 제3자나 피해자가 보기엔 도덕적 책임감을 외면한 것처럼 보여도) '쿨'한 것을 선호했고, 계속해서 되짚어보거나 큰 판단을 재검토, 재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핵에 대해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동료들을 '궁상'으로 표현한 것을 보아도 그가 신속하게 결론내리지 못하는 행동을 부정적인 눈으로 보았음이 묻어난다. 덤으로 맨눈으로 핵폭발을 보면 눈이 먼다는 [[도시전설]]이 거짓말임을 몸으로 증명했다. 이전까지 [[높으신 분들]]은 핵 실험을 참관할 때 모두 [[http://lh3.ggpht.com/kaushik810/SHs5HSlWfEI/AAAAAAAACNA/3hPHR-eQ1JU/watching-nuclear-explosion%20%284%29_thumb%5B2%5D.jpg|이런 모양의 고글]]을 끼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봤었다. 그러나 파인만은 자동차 안에서 맨눈으로 보았고 정말 멀쩡했다. 이는 핵폭탄이 터질 때 발생하는 빛 중 가시광선보다 [[자외선]]이 더 해롭기 때문인데, 이를 알았던 파인만은 자외선만을 막기 위해 차 안에서(자외선은 유리를 통과하지 못한다) 실험을 참관했다.[* 물론 장거리에서 참관했으며 차량 유리를 통해 자외선을 막았기에 그런 거지, 두 조건 중 하나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당연히 좋은 꼴은 보지 못한다.] 남들이 10km 거리에서 얼굴도 못 들고 후폭풍이랑 싸울 때 자신은 30km 밖에서 저 앞에선 머리도 못 들고 있겠지~하면서 구경했다고 한다. [[파일:노년의 리처드 파인만.jpg|width=200]] 말년엔 환각 탱크를 이용한 환각체험을 하는 등 신비스러운 것들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과학]]과 합리적인 생각이 그의 습관이기에 인과관계를 무시하고 맹신하는 말도 안 되는 것은 [[화물 신앙]](Cargo Cult)라고 부르며 별로 안 좋아했다. 그런 사고방식을 고수하면서 [[철학]]계의 뻘짓도 깠는데, 이는 당시 상대성이론을 두고 (특히 유럽 쪽) 철학계가 뻘짓한 게 좀 크다. 쉽게 말해서 상대성 이론을 제목만 보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고 생각하여 막 써먹었다.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에서는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면서 이에 대한 철학계의 오해를 비판하는 데 제법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포스트 모더니즘]] 그룹은 훗날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으로도 한방 물을 먹기도 했다. 로스 알라모스 시절에 피폭된 [[방사능]]으로 인해 [[암]]투병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과학적인 생각은 죽지 않아서 1986년 1월 발생한 [[STS-51-L]]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의 조사위원회에 초청되어 활동했으며, 혼자서 나머지 조사위원 11명을 올킬하는 위엄을 보인다. 폭발이 물리적으로는 저온 상태에서 탄성이 저하된 O자 형태의 고무링(줄여서 O링이라 부른다.)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보신주의 문화와 관료체계에 쩔어있는 [[NASA]]의 문화에 있음을 밝혀냈다. 이때 조사 결론 발표장에서 간단하게 입증했던 실험이 '''O링 테스트'''다. 고무링을 꼬아서 고정시킨 뒤 얼음물에 넣으면 탄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해보인 것이다. [[https://youtu.be/6Rwcbsn19c0|실험 영상]] 단, 알려진 것처럼 파인만 혼자서 이 사실을 알아낸 것은 아니다. 파인만 본인이 나중에 말했지만, 이미 나사의 현장 엔지니어들은 O링이 문제였을 거라는 심증을 굳히고 있었지만 쓸데없이 입을 열었다가 보복을 받기 싫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파인만의 자서전이나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챌린저: 마지막 비행 등에 다르면 당시 조사위원회는 [[로널드 레이건]]의 지시를 받은 위원장의 영향으로 최대한 나사의 입장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 중 친정부에 속하지 않았던 한 명이었던 공군 소장 [[도널드 쿠티나]]에게 [[샐리 라이드]]가 비밀리에 O링과 낮은 기온 간의 문제 가능성을 쪽지로 전달했고, 쿠티나는 샐리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의심을 받지 않을 방법을 고심한 끝에 매우 교묘하게 파인만에게 정보를 흘린다. 파인만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아끼는 자동차 보러 오시겠음?' 라는 식으로 넌지시 파인만을 초대했고[* 권위를 싫어하던 파인만은 위원회 초창기 다른 조사위원들이 리무진을 제공 받아 출퇴근하는 동안, '난 투스타니까 지하철이나 타고 다니겠음. 지하철역은 어딘가요?' 하던 쿠티나를 좋게 여겼다고.] 파인만에게 '엔진에 쓰이는 O링이 날씨가 추우니까 문제가 생기는지 엔진이 자꾸 새더라' 식으로 암시를 흘렸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파인만은 이후 O링을 붙들고 늘어지며 이게 문제였음을 사람들 앞에서 알리게 된다.[* 그 익명의 제보자가 NASA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 [[샐리 라이드]] 박사였다는 건 샐리 라이드 박사가 2012년 7월 세상을 떠난 뒤에야 쿠티나 장군이 이 사실을 공개했다. 생전에 공개되었다면 험한 꼴을 당했을 것이라는 게 불 보듯 뻔했으니.. 아무튼 이 시절의 경력 덕에 샐리 라이드 박사는 21세기 [[STS-107]] 컬럼비아호 참사에서도 진상조사단에 참여하기도 했다.] 2013년 BBC에서 제작한 TV 영화 에서 이 모습이 교묘히 나타난다. 작중 배경을 잘 모르던 사람은 막판 반전을 깨닫고 무릎을 탁 칠 정도. 파인만은 신장 투석까지 받아가며 사건의 규명에 매달렸다. 쿠티나 장군의 조교 행각은, 나쁘게 말하면 파인만을 이용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게 보는 건 너무 삐딱한 시각이고,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면서도 친구를 곤란하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할까 고민한 사람의 현명한 결정 정도로 생각하자. 파인만 본인 역시 이 장교의 합리적인 사고방식, 검소한 생활 등을 매우 좋아했고 그와 친하게 지냈다. 여담으로 이 조사위원회 위원 중에는 달 착륙으로 유명한 [[닐 암스트롱]]도 있었는데, 파인만은 암스트롱에게 굳이 싸인을 얻으려 했다. 주위 사람들은 파인만의 성격을 알아서 파인만이 싸인을 딸아이에게 주기 위해 저런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다른 사정이 있었다. 한 택시기사가 파인만에게 암스트롱의 싸인을 받아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 택시기사는 파인만이 노벨상 받은 슈퍼스타 과학자인지도 모르고 그냥 [[높으신 분]]이라고만 알았다.[* 파인만이 스타 과학자이긴 했지만, 미국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영웅'으로 인류의 마지막 순간까지 영원히 기록될 암스트롱의 인지도에는 못 미쳤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적절하다. 당장 어린이용 과학만화 펼쳐보면 둘 중 어느 이름이 많이 나오는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